신용회복경험담
6,500만 원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다시 삶을 마주보다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5.13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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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부: 채무 발생 전의 일상적인 삶
올해로 46살이 된 저는 시청에서 근무 중인 공무원입니다. 20대 후반에 입사해 지금까지 큰 탈 없이 일해왔고, 고등학생 두 자녀와 아내와 함께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며 살아왔습니다.
직장에서의 평판도 무난했고, 매달 꼬박꼬박 나오는 급여 덕분에 생활에 큰 걱정은 없었습니다. 다만, 매너리즘처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제 삶은 점점 무기력해졌고, 뭔가 자극적인 걸 찾게 되더군요. 그게 불행의 시작이었습니다.
2. 전개: 채무 발생과 악화 과정
처음엔 그냥 재미로 시작했습니다. 지인들과 함께 스포츠 경기를 보며 배팅을 해봤는데, 한두 번 따니까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조금 더 하면 애들 학원비 정도는 벌 수 있겠지" 하는 가벼운 마음이 점점 커졌고, 나중엔 카지노 앱까지 손을 대게 됐습니다.
처음엔 카드 현금서비스와 대출로 시작해, 점점 대부업체까지 손을 뻗었습니다. 한두 번 잃은 걸 만회하려고 더 큰 돈을 걸었고, 그게 반복되면서 채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결국 2년 8개월 만에 빚이 6,500만 원을 넘겼습니다. 대부업체 세 곳, 저축은행 한 곳에서 빌린 돈은 매달 이자만 70만 원이 넘었고, 급여로는 원리금은커녕 생활비도 모자라기 시작했죠. 그때부터 제 삶은 서서히 무너졌습니다.
3. 위기: 개인회생 결심까지의 상황
결정적인 사건은 아내에게 대출 사실이 들통난 날이었습니다. 숨기려고 했던 게 결국 신용등급 하락과 연체 알림으로 드러났고, 그날 집에 돌아왔을 때 아내는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아내가 흘린 눈물은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순간, 제 자신이 너무도 부끄럽고 한심했죠.
한 달 넘게 매일같이 이불 속에서 괴로워하며 살았습니다. "퇴직금으로 막을 수 있을까?",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그건 가족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는 일이겠지요. 결국 공무원 동료 한 분이 조용히 개인회생 제도를 알려주셨고, 상담을 받기로 결심했습니다.
처음 상담실 문을 열 때는 얼굴이 화끈거릴 만큼 창피했습니다. 제 직업을 말하는 것도 부끄러웠고, 이 나이에 이런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참담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게 제 두 번째 인생의 시작이었습니다.
4. 해결: 개인회생 진행 과정
상담을 받고 법원 인가를 받기까지는 약 7개월 정도 걸렸습니다. 제출해야 할 자료가 많았고, 공무원 신분이라 더욱 투명하고 정확한 소명이 필요했습니다.
제 변제계획은 월 42만 원씩 60개월, 총 5년 동안 상환하는 조건이었습니다. 원금 일부만 갚는 구조였고, 이자 부담이 사라졌다는 점이 가장 큰 위안이었습니다.
법원에 출석했을 때는 판사님 앞에서 제 도박 경위를 설명해야 했는데, 그때는 정말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했고, 재발 방지를 위한 계획도 함께 말씀드렸습니다. 결국 인가 결정을 받을 수 있었고, 그날 저녁엔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밥을 먹으며 마음 편히 웃을 수 있었습니다.
5. 결말: 현재의 변화와 희망
지금은 개인회생 변제 2년 차입니다. 매달 변제금을 꼬박꼬박 납부하고 있으며, 도박 관련 앱은 전부 삭제하고 병원 상담도 받으며 재발을 막고 있습니다.
가족들과도 많이 가까워졌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산책하며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늘었고, 아내와도 다시 신뢰를 쌓아가는 중입니다. 공무원으로서도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며 조용히,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겐 지금 이 시간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과거의 잘못을 돌아보게 해 준 시간, 그리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개인회생 제도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도박이나 감정적인 선택으로 인해 채무에 빠지신 분이 있다면, 꼭 말하고 싶습니다. 숨지 말고, 자책만 하지 말고, 제대로 된 도움을 받으세요. 법은 다시 살아갈 기회를 줍니다. 저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