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경험담

2025.08.01 14:42

27세 이공계 대학원생의 개인회생 이야기

  • 최고관리자 12일 전 2025.08.01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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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부: 평범했던 연구실의 나날

대학원에 진학한 저는 실험실과 강의실을 오가며 연구에 매진하던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조교 활동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생활비와 등록금을 충당했고, 미래엔 박사과정까지 밟아 연구소에 취업하는 게 목표였죠. 친구들과 게임하고, 주말에 소소한 술자리를 갖는 것 외에는 별다른 소비도 없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 삶이 이렇게 흔들릴 거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2. 전개: 도박이라는 함정에 빠지다

문제는 군대 동기 모임에서였습니다. 한 친구가 스포츠 토토로 재미 좀 봤다며 앱을 소개해줬고, 호기심에 시작한 것이 점점 일상이 되었습니다. 처음엔 소액으로 즐기다가 어느새 판돈은 커졌고, 더 자극적인 걸 찾다 보니 온라인 카지노에도 손을 댔죠.
딴 돈으로 다음 게임을 하고, 진 돈을 메꾸려고 또 베팅하고… 반복된 악순환 속에서 저는 2년 8개월 만에 약 6,500만 원의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대부업체 3곳에서 고금리로 돈을 빌리고, 저축은행에서도 추가 대출을 받았습니다. 처음엔 “이번 한 번만 이기면 갚을 수 있어”라고 스스로를 속였지만,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연구도, 인간관계도 엉망이 되어갔습니다.




 

3. 위기: 벼랑 끝에서 마주한 현실

결정적인 계기는 어머니의 눈물이었습니다. 제 통장으로 계속 날아드는 독촉 문자와 전화 때문에 부모님께까지 상황이 알려졌고, 모르는 척하던 가족에게 들켰을 때의 그 죄책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울면서 “살 길이 있으면 살고, 없으면 너는 나랑 끝이다”라고 말하셨죠.
그날 이후로 저는 밤잠을 이루지 못하며 3주 넘게 고민했습니다. 극단적인 생각까지 떠오를 정도였지만, 지인 한 명이 조심스레 ‘개인회생’이라는 제도를 알려줬고, 곧 상담을 받게 됐습니다. 상담실 문을 열기까지, 제 삶 전체가 무너지는 듯한 불안감과 수치심이 엄청났습니다. 하지만 막상 이야기를 꺼내자, 처음으로 살 수 있다는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4. 해결: 회생을 향한 첫걸음

상담 후 서류를 준비하고 법원에 신청하기까지 약 3개월이 걸렸습니다. 저는 매월 약 27만 원을 3년간 갚는 변제계획을 제출했고, 다행히도 법원은 이를 인가해주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건 매달 수입증빙과 지출통제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용돈은 물론이고 친구들과의 만남도 거의 끊고, 실험실-자취방-도서관의 루틴 속에서 견뎌야 했죠. 법원 출석 때도 긴장과 자괴감이 컸지만, 판사님의 “갚을 의지가 중요합니다”라는 말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개인회생 인가 후, 무엇보다도 빚 독촉 전화가 사라졌다는 점에서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정기적으로 갚기만 하면 법적으로 보호받는다는 사실은 제게 엄청난 위안이 되었습니다.




 

5. 결말: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

지금은 변제 1년차를 지나는 중입니다. 27만 원이라는 돈이 적은 건 아니지만, 규칙적으로 갚아나가며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연구도 다시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졸업 후엔 정직한 돈을 벌어 가족에게 떳떳한 아들이 되고 싶다는 목표도 생겼습니다. 도박의 유혹이 여전히 머릿속을 맴도는 날도 있지만, 상담받았던 날의 제 모습과 어머니의 눈물을 기억하며 이겨내고 있습니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는 분 중 저와 같은 상황에 놓인 분이 있다면,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혼자 끙끙 앓지 말고 도움을 받으세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다시 살아보기 위한 선택입니다.

저는 이제 제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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