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경험담

2025.07.03 10:27

아이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결국 나를 위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7.03 10:27
  • 27
    0

1. 도입부: 채무 발생 전의 일상적인 삶

시청에서 근무한 지 어느덧 20년이 넘었습니다. 안정적인 직장 덕분에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소소하지만 평온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죠. 큰아이와 둘째 모두 공부에 열심이었고, 저희 부부는 아이들이 원하는 길을 가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퇴근 후 가족들과 도란도란 저녁을 먹고, 주말엔 가까운 산에 오르며 스트레스를 풀던 평범한 일상. 그게 전부였지만, 부족할 것 없는 행복이었죠.



 


2. 전개: 채무 발생과 악화 과정

하지만 첫째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외 대학에 진학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고민은 시작됐습니다. 장학금을 일부 받긴 했지만, 생활비와 등록금을 모두 감당하긴 어려웠습니다. 당시엔 아이의 꿈을 응원하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 무리하게 은행에서 유학자금을 대출받았습니다.

2년 뒤엔 둘째도 같은 길을 원했고, 그때부터 신용카드 현금서비스까지 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곧 갚을 수 있겠지” 싶었는데, 4년이 지나면서 은행 두 곳과 카드사 두 곳에 총 8천만 원의 빚이 쌓여버렸습니다. 이자만 매달 백만 원이 넘게 나가고, 급여 통장에서 돈이 사라지는 걸 보며 점점 숨이 막히기 시작했습니다.



 


3. 위기: 개인회생 결심까지의 상황

결정적인 계기는 아내가 몰래 제가 숨겨둔 카드론 명세서를 본 날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둘이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었습니다. “우린 왜 이렇게까지 됐을까…” 자책과 후회가 밀려왔고, 몇 달간 밤잠을 설쳤습니다.

결국 회사 선배에게 조심스레 고민을 털어놓았고, 그 선배가 “개인회생을 고려해보라”고 말했습니다. 처음엔 부끄럽고 두려웠습니다. 공무원이면서 개인회생이라니… 하지만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는 생각에 법률 상담을 받게 되었죠. 상담실 문을 열던 그 순간, 제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습니다.



 


4. 해결: 개인회생 진행 과정

상담을 받은 후 서류 준비부터 법원 인가까지 약 6개월이 걸렸습니다. 그동안 퇴근 후 틈틈이 서류를 모으고, 아내와 함께 가계부를 정리하며 소득과 지출을 명확히 계산했습니다. 결국 법원에 월 35만 원씩 3년간 변제하는 계획을 제출했고, 다행히 인가를 받게 됐습니다.

법원 출석 날, 판사 앞에 서니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하지만 판사는 제 상황을 이해해주었고, 성실히 갚겠다는 저의 의지를 믿어주었습니다.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매달 정해진 금액을 갚을 수 있다는 안정감 덕분에 다시 숨을 쉴 수 있게 되었습니다.



 


5. 결말: 현재의 변화와 희망

지금은 변제를 시작한 지 1년이 조금 지났습니다. 여전히 빠듯하지만, 더 이상 카드값에 허덕이지 않아도 됩니다. 무엇보다 가족과의 관계가 회복된 것이 가장 큰 변화입니다. 아이들도 “아빠 고생 많았어요”라며 가끔 메시지를 보냅니다.

앞으로 2년 뒤 모든 변제가 끝나면, 다시 저축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퇴직 후에도 자립할 수 있는 삶을 준비하는 게 목표입니다.

이 글을 보는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빚은 감추는 것보다, 인정하고 해결하려는 용기가 중요합니다. 개인회생은 포기가 아닌 새로운 시작의 방법이었습니다. 누구보다 간절했던 그 마음, 저도 잘 압니다. 부디 용기 내시길 바랍니다.



 



  • 공유링크 복사
f4ef6bc265ef7fc56fa0f5a11421a9e3_1744615509_2165.png